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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이 - 내 죄는 무엇일까시(詩)/시(詩) 2019. 9. 16. 21:55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낳고 젖을 주고 흙을 다지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따닥따닥 붙은 콜센터에서 상냥하게 친절하게
보이지 않아도 웃고 보이지 않아도 참아서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직업소개소를 찾으니
학력 미달 경력 없고 나이 많고 애도 있어
손가락 하나로 끌려나왔다 끌려나가도 그 자리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아이 손을 잡고 광장에 나가지 못한다
네가 죽어도 일을 해야 해서
누가 죽어도 나는 살아야 해서
기약 없는 먼 훗날을 끌어당겨서라도
지금 살아야 해서 촛불을 들 수 없는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쪼들려서, 악착같이, 외로움에, 죄책감으로 찌든
수척한 감정들이 들러붙어 빠져나가지 못하는
나는 파란색일까 까만색일까 붉은색일까
내가 여자를 입었는지 여자가 나를 입고 있는지
나를 찾아 출구를 더듬거리며 오늘을 걷는다만
여자의 시간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나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그림 : 박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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