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수옥 - 바늘의 말투시(詩)/시(詩) 2019. 9. 7. 09:58
바늘의 말투로는
아무리 뾰쪽한 말의 끝도 자를 수 있지
꽉 막힌 말투에
톡, 한 방울 꽃을 피울 수 있어
혹은 뜯어지거나 벌어진 말을
깁고 수선할 수 있지만
풀리지 않아 난해한 실타래는 삼켜버리지
가시가 돋친 무덤덤한 표정으로
빨간 보호색을 입지
침침한 말투로는 절대 꿸 수 없는
봉합의 실 끝
곳곳을 지나가며
누비는 실의 선두(先頭)는 절대
헝클어지거나 꼬이지 않아
어떤 말투로는 옷을 지을 수도 있지
박음질로 곱게 누빈 표정은 직설적이야
긴 실타래가 똑똑 송곳니를 거쳐 오듯
점점이 끊어져 내리는 눈
옷 한 벌 짓지 못한
눈밭을 누비며 지나간 저 설치류들의
발자국은 또 어떤 바늘의 끝
발갛게 시린 말투들일까
귀를 놓친 바늘은
또 다른 실수를 찌르겠지만
바늘의 말투로 허상의 사람하나를
꿰매야 할 때도 있어
(그림 : 조은주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수옥 - 사과의 생각 (0) 2019.09.07 노수옥 - 박제된 시간 (0) 2019.09.07 노수옥 - 시월 (0) 2019.09.07 현택훈 - 솜반천길 (0) 2019.09.07 김시탁 - 가을비 (0) 2019.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