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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 늙은 전공의 노래시(詩)/신경림 2017. 1. 22. 17:40
이 부르튼 손과 발을나는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이 멍든 팔과 다리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깊은 산골짜기에 외진 섬마을에
환하게 밝혀진 불빛이 말하리니,
공장에서 광산에서 부두에서
힘차게 돌아가는 기계소리가 노래하리니,
이 부르튼 손과 발의 이야기를,
이 멍든 팔과 다리의 노래를.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공중에 매달려 전선을 잇던 괴로움을,
영하 이십도의 벌판에서 새로 전주를 세우던 날의 기쁨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부러진 전주 불타 끊어진 전선을
넉걷이하던 아아 그날의 아픔을.
저 불빛 기계소리는 노래하는구나,
내 작업화 자욱 찍힌 곳에 새로 피 돌고
내 손길 닿은 곳에 새 힘 솟구친다고.
나는 늙은 전공 내 이마엔 굵은 주름손등에는 험한 상채기뿐이지만
나는 오늘도 간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 온몸에 받으며,
불빛이 말해 주는 얘기 들으며,
기계소리가 들려주는 내 노래 들으며,
이 땅 방방곡곡에 발자국 더 깊이 찍으리.
불빛과 기계소리 더 높이 울리리,
언 어깨 못박힌 손으로
이 나라 하늘 떠받치리.
(그림 : 송주웅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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