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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 살구나무 그림자가 바위를 미는 동안시(詩)/손택수 2016. 6. 24. 23:11
구름이 산등성이를 밀고 지나갑니다
번지는 먹그늘에 산이 안색을 바꿉니다
오늘은 기다리는 일로만 하루를 온전히 탕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마당에 비질을 하고, 맑게 갠 귀퉁이에
살구나무 그늘이 밑동의 바위를 미는 걸 지켜보렵니다
나무가 밀다 만 바위귀에 툭,
모래알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하루
술렁이는 그림자 따라 바위도 할 말이 많은 표정입니다
바위도 외로우면 금이 가고, 쩌억
저라도 쪼개 마주하고 싶은 것일까요
한때 저는 저 나무둥치에 그리운 이의 이름을 파 넣었지요
지금은 기억에도 없지만
지워지고 지워져서
한잎이 되고, 또 한잎이 되어 돋아나는 당신이 있습니다
이 오랜만의 기다림은 한눈을 잘 팔던 아이를 생각나게 합니다
저물녘 쿨럭이는 슬레이트 지붕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아이
제가 평생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저녁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무엇을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림 속에 빠져 있던
그 외로운 아이인지도 모릅니다
기다리는 일 하나만으로 참 멀리 갔다 온 듯합니다
이걸 영원이라고 불러도 좋을지요
언젠가 저도 저 산등성이를 밀며 가는 구름을 따라 흘러 가겠습니다
(그림 : 김윤종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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