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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시(詩)/김경미 2015. 9. 4. 00:57
낯선 읍내를 찾아간다 청춘이 시키는일이다
포플러나무가 떠밀고
시외버스가 부추기는 일이다
읍내 우체국 옆 철물점 싸리비와
고무호스를 사고 싶다
청춘의 그 방과 마당을 다시 청소하고 싶다
리어카 위 잔뜩 쌓인 붉은 생고기들
그 피가 옆집 화원의 장미꽃을 피운다고
청춘에 배웠던 관계들
언제나 들어오지 마시오 써 있던 풀밭들
늘 지나치던 보석상 주인은 두 다리가 없었다
머리 위 구름에서는 언제나 푸성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손목부터 어깨까지 시계를 차도 시간이 가지 않던
시간이 오지 않던
하늘에 1년 내내 뜯어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건
좌절과 실패라는 것도 청춘의 짓이었다
구름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고개가 부러졌던 스물셋
설욕도 못한 스물여섯 살의 9월
새벽 기차에서 내리면 늘 바닷속이었던
하루에 소매치기를 세 번도 당했던
일주일 전 함께 갔던 교외 찻집에 각각
새로운 연인과 동행했던 것도
어색하게 인사하거나 외면했던 것도 언제나
청춘이 시킨 짓이었다
서른 한살에도 서른여섯 살에도
계속 청춘이라고 청춘이 계속 시키며
여기까지 오게 한 것도 다 청춘의 짓이다
어느덧 불 꺼진 낯선 읍내
밤의 양품점 앞에서
불 꺼진 진열장 속 어둠 속 마네킹을 구경하다가
검은 마네킹들에게 도리어 구경당하는 것도
낯선 읍내 심야 터미널 시외버스도
술 취해 옆 건물 계단에 앉아 우는 남학생도
떨어져 흔들리는 공중전화 수화기도
다 청춘이 불러낸 짓이다
그 수화기 떨어지며 내 청춘 끝났다 절규하던 목소리도
그 전화 아직 끊기지 않았다는 것도
지금이라도 얼른 받아보라고
지금도 시키는 것도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아직도 시킨다고 따라나서는 것도
아직도 청춘이 시키는 일이라고 믿는 청춘이
있다는 것도 다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그림 : 고재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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