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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은 아마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신혼 시절 제일 처음 얻었던 언덕빼기 집
빛을 찾아 우리는 기어오르곤 했어
손에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나는 두드렸어
그러면 문은 대답하곤 했지
삐꺽 삐꺽 삐꺽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빛이 거기서 솟아나고 있었어,
씽크 대 위엔 미처 씻어주지 못한 그릇들이 쌓여 있었지만
마치 씻어주지 못한 우리의 젊은 날처럼 쌓여 있었지만
그 창문도 아마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싸구려 커튼이 밤낮 출렁거리던 그 집
자기들이 얼마나 멀리 아랫동네를 바라보았는지를
그 자물쇠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자기들이 얼마나 단단히 사랑을 잠글 수 있었는가를
그 못자국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자기들이 얼마나 무거운 삶의 옷가지들을 거기 걸었는지를
어느 날 못의 팔은 부러지고 말았었지
새벽은 천천히 오곤 했어
그러나 가장 따듯한 등불을 들고
그대를 기다리곤 하던 그 나무계단을 잊을 순 없어
가장 깊이 숨어 빛을 뿜던 그 어둠을 잊을 순 없어
어두울수록 등불의 살은 은빛으로 빛나더니
아, 그 벽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저녁이면 기대 앉아 커피를 들던
그 따스한 벽
순간도 영원인 환상의 거미 날아오르던 곳
자기가 얼마나 튼튼했는지를
사랑의 잠 같았는지를
(그림 : 박용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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