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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나 차라리 씀바귀라도 될 일이다.
일 년 가야 기침 한번 없는 무심한 밭두렁에
몸을 얽히어
새끼들만 주렁 주렁 매달아 놓고
부끄러운 낮보다는 밤을 틈타서
손을 뻗쳐 저하늘의 꿈을 감다가
접근해오는 가을만 칭칭 감았다.
이 몽매한 죄,
순결의 비린내를 가시게 하고
마른 몸으로 귀가하여
도리깨질을 맞는다.
도리깨도 그냥은 때릴 수 없어
허공 한 번 돌다 와 후려 때린다.
마당에는 야무진 가을 아이들이 뒹군다.
흙을 다스리는 여자가 뒹군다.
(그림 : 박종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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