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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 마늘처럼 맵게시(詩)/길상호 2015. 2. 5. 02:04
생각 없이 마늘을 찧다가
독한 놈이라고, 남의 눈에 들어가
눈물 쏙 빼내고 마는 놈이라고
욕하지 말았어야 했다
단단한 알몸 하나 지키기 위해
얇은 투명막 하나로 버티며 살아온
너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야 했다싹도 틔우지 못한 채 칼자루 밑에
닭살처럼 소름 돋은 통 속에서
짓이겨진 너의 최후를 떠올려야 했다
네가 밀어 올렸던 줄기들 뽑혀 가던 날
거세당한 사내처럼 속으로 울던
뿌리들의 고통 잊어버리고
기껏 눈물 한 방울이 무엇이기에
누구를 욕하고 있단 말인가
독하면 독할 수록 맛이 나는 게
그런 게 삶이 아닌가, 저 마늘처럼
모든 껍질 벗겨지고 난 뒤에도
매운 오기로 버티는 게 삶이 아닌가(그림 : 김백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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