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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택수 - 낡은 자전거가 있는 바다
    시(詩)/손택수 2014. 10. 28. 01:45

     


           

    외갓집 소금창고 구석진 자리에 낡은 자전거 한대가 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었지만, 수리하면 쓸만하겠는걸.

    아마도 나는 길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쌩쌩 미끄러져 다녔을

    은륜의 눈부신 전성기를 생각했는지 모른다.

     

    논둑길 밭둑길로 새참을 나르고 포플러 푸른 방둑길 따라 바다에 이르던 시절,

    그는 아마도 내 이모들의 풋풋한 젊은 날을 빠짐없이 지켜보았으리라.

    읍내 영화관 앞에서 빵집 앞에서 참을성 있게 주인을 기다리다,

    아카시아 향기 어지러운 방둑길로 푸르릉 푸르릉 바큇살마다 파도를 끼고 굴러다니기도 했을,

    어쩌면 그는 열아홉 꽃된 처녀아이를 태우고 두근두근 내 아버지가 될 청년을 만나러 가기도 했으리라.

     

    바다가 보이는 풀밭에 누워 클레멘타인 클레멘타인,

    썰물져 가는 하모니카 소리에 하염없이 젖어들기도 하였으리라.

    그때 풀밭과 바다는 잘 구분이 되질 않아,

    멀리서 보면 그는 마치 바다에 누워 즐겨 꿈에 젖는 행복한 몽상가로 보이지 않았을까.

     

    첫사랑처럼 한 번 익히고 나면 여간해선 잘 잊혀지질 않는 자전거, 손잡이 위의 거울 먼지를 닦아본다.

    거울은 오래 전부터 그렇게 나를 품고 있었다는 눈치다.

    턱없이 높은 앉을깨 위에서 페달이 발에 잘 닿지 않는다고 하면 투정을 부리던 철부지 아이를,

    맥빠진 앞바퀴 뒷바퀴 타이어에 바람 빵빵 밤 늦도록 소금자루 같은 달을  태우고 비틀대던 방둑길을

    (그림 : 장철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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