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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대웅 - 양수리(兩水里)에서
    시(詩)/권대웅 2014. 10. 9. 11:29



    강(江)에서 사는 사람들은 江을 닮아간다
    그물을 올리며 그들은 자기 가슴에 남은 양식을 확인한다
    인자한 아버지처럼 칭얼대는 물의 투정 위에 돛대를 풀어놓고
    말없이 강바닥을 넓혀가는 그들


    그물을 따라 자주 세월의 아픈 흔적도 따라 올라와
    멀리 유전(流轉)하는 구름 한번 바라보며 고개 숙이면
    사무친 물 속 깊이 올라오는 물방울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철없는 물고기떼 무심히 지나갈 때
    홀연 슬픔이 많은 모습으로 저녁 햇살은 떨어지고
    물살에 입술 비비는 노을 애태우지 않아도
    알지 내 알어 고개 끄덕이며 자기 가슴에 묻고
    지금 살아 있는 것들
    무수히 파닥이는 것들 다스리며 돌아오는 그들
    그윽한 깊이 감추며 후광(後光)에 비치는 붉은 얼굴
    모두들 쳐다볼 때
    히, 손 한번 흔들어 물 속에 어우러지는 그들


    햇빛에 탄 팔뚝은 푸드득 튕기는 한 마리 잉어처럼
    그물을 펼쳐 생기찬 양식을 풀어 던질 때
    물풀같이 미끄러운 여자(女子)들의 손가락
    물의 깊이를 헤아려
    가슴에 江이 흐르는 여자(女子)들은 얼마나 따뜻할까
    젖은 몸 푸릇한 내음 풍기며
    낮게 낮게 가라앉는 풀잎
    멀리 눈을 들어 젖은 머리카락 돌아서는
    물푸레나무 그림자 길게 드러눕고
    어슴푸레 짙어오는 어둠 속으로 일찍 돌아가는 그들

     

    알고 있는 것일까
    두 갈래의 물이 만나는 슬픔
    어우러져 한데 흘러가야 할 세월
    밤이 되자 물새알 같은 달이 부풀고
    강의 아픈 늑골로부터 피어오르는 안개, 안개
    물의 조상으로부터 받은 계시
    그들의 법(法)으로 잠든 밤 이 밤에 벌어질 반란을
    절룩거리며 절룩거리면 수없이 밀려오는 강의 역사를
    안개의 아픈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일까
    고요와 적막에 묻혀
    물 뒤척이는 소리 깊은 밤
    그래 알지 알어 꿈속에서도 물과 함께 어우러져
    江에서 사는 사람들
    江이 흘러가야 할 세월을 다스린다

    (그림 : 이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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