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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언 - 겨울 바람시(詩)/시(詩) 2014. 8. 5. 22:36
- 미조포구에서
아담한 고요가 정갈한 노을로 깔리는
남해의 끝
조금씩 마모되는 꿈에 기대어
낡은 어선 몇 척 흔들흔들 정박해있던 곳
어디로부터 날아왔는지 이따금
몇 무리의 낯선 물새들
거센 바람 한 줄기씩 베어 물고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언 날개를 묶는
어스름이 유난히 포근했던 곳
지상의 끝을 다정히 감싸 안고
은밀하게 달아오르던 노을 속에
긴 겨울밤 내내
방파제 품안에 외로운 몸 찰싹여대던 파도를 닮은
서늘한 눈매의 情婦 하나 숨겨 놓고 싶은 곳
미처 녹지도 않은 아침 햇살을 서걱서걱 걸치고
어디론가 출항해버린 작은 어선들이
공연스레 공허하던 곳
부시시한 표정으로 황망히 떠나오던 길목
저멀리 하얗게 넘어지며 손 흔들던 남해 바다가
가야만 하느냐 하느냐 간간이 배어나오는 눈물을 섞어
듬성듬성 눈발을 끼얹어대던 산모퉁이
웬 바람은 또 그리도 거세게 발을 걸던지
넘어져 상처투성이인 마음은 이미 휘청휘청
절벽 아래 방파제 끝에 노을로 얼어붙어
언제까지나
그 미조의 파도빛 눈매를 기다리고 싶었다네
간혹은 철렁 까닭 모르게 일상을 주저앉히고
보송보송한 바람 두어 자락 머플러처럼 두르고
불현듯 찾아가
몇 줌의 눈발에 발길을 묶고
노을과 더불어 마냥 주저앉고 싶을 것이라네
(그림 : 오유화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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