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문태준 - 빈집의 약속
    시(詩)/문태준 2014. 6. 6. 12:23

     

     

     

    (낭송 : 문태준 시인)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별이 보고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검당 볕 내리는 고운 마루에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늦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
    겨울방이 방 한켠에 묵은 메주를 매달아 두듯

    마음에 봄 가을없이 풍경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하릴없이 전나무 숲이 들어와 머무르는 때가 나에게는 행복하였다
    수십 년 혹은 백 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

    천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
    뭉긋이 앉은 그 나무들의 울울창창한 고요를 나는 미륵들의 미소라 불렀다
    한 걸음의 말도 내놓지 않고 오롯하게 큰 침묵인 그 미륵들이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다

     

    그러나 전나무 숲이 들어앉았다 나가면 그뿐, 마음은 늘 빈집이어서
    마음 안의 그 둥그런 고요가 다른 것으로 메꾸어졌다
    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듯

    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 같은 것
    그것이 빈집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시(詩) > 문태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태준 - 여름밭  (0) 2014.08.27
    문태준 - 붉은 동백  (0) 2014.08.14
    문태준 - 늦가을 살아도 늦가을을  (0) 2014.01.15
    문태준 - 극빈  (0) 2014.01.03
    문태준 - 먼 곳  (0) 2014.01.02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