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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조
    시(詩)/김남조 2014. 3. 5. 20:15

     

     김남조의 ‘시의 세계와 사랑’ 

    1953년 첫시집 《목숨》은 사랑의 그리움을 가톨릭 계율의 경건성과 참신한 정열의 표출이 조화를 잘 이루었다고 평가된다. 이후의 시집 《나아드의 향유》(1955) 《나무와 바람》(1958) 《정념의 기》(1960) 등으로 이어지면서 뜨거운 정열의 표출보다는 종교적 구원의 갈망이 더욱 심화되어 절제와 인내가 내면화된 가운데 자아를 성찰하는 모습이 형상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풍부한 상상력으로 정감어린 세계를 그려낸 시집 《겨울 바다》(1967)를 비롯해 《설일(雪日)》(1971) 《사랑초서》(1974) 《동행》(1980) 《빛과 고요》(1983) 등 후기 시집으로 가면서 더욱 심화되어감을 알 수 있다. 특히 제8시집 《사랑초서》는 전편이 '사랑'을 주제로 다룬 연작시로 '사랑의 시인'으로 불리는 작가의 면모를 더욱 분명히 해준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인간의 영혼을 고양하는 사랑의 원초적인 힘을 종교적 시각에서 승화시켜 노래한 작가는 의욕적인 작품 활동으로 30여 권이 넘는 시집을 발간했다.

    특히 삶의 근원이자 원동력인 '사랑'에 관한 지속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천착을 통해 생의 존재론적 탐구에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상; ‘두산백과사전’에서 발췌-

    시인 김남조가 줄곧 추구해 온 ‘사랑’이란 무엇일까? 작가의 시를 종교시(宗敎詩)로 단정할 수 없을지 모르나, 그의 일관된 시의 세계는 ‘가톨릭 정신’에 의거한 ‘사랑’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사랑의 본질은 다음과 같은 가톨릭 문학과 밀접하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가톨릭교회는 인간의 문화 창작이나 그 감상의 자질을 하느님이 주신 자연과 능력 중의 하나로 보고, 이 능력이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가르친다. 물론 시인이나 작가의 사명이란 어디까지나 예술적 감동, 즉 인간에게 그 정신이나 감각의 조화된 만족이나 기쁨을 주는 데 있다. 그런데 ‘가톨릭 문학자’라는 일컬어지는 작가에게는 작품의 세계 속에서는 죄악 속을 헤매면서도 한 인간으로서는 그 죄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윤리적 의무가 있다. 즉 예술에는 윤리적 의무가 없지만 그 주체가 되는 작가는 자기 완성에 윤리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예술적 미적 창조에서도 절대미의 추구와 인간의 불완전성은 항상 상충(相衝)되는 것이다. -‘한국 가톨릭대사전’에서 요약-

    이상으로 미루어 볼 때, 가톨릭 문학이란 ‘화해(和解)와 구원(久遠)’이란 명제(命題)로 요약될 수 있으며, 김남조가 추구하는 ‘사랑’도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시적 경향은 선명한 이미지로 전달되기보다는 이미지의 내면에 관념적 의미 구조가 도사리고 있어 독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기도 하다.

     

    죄가 많으려고 죄가 얼마나 많으려고 끝끝내 너 하나를 잊지 못해 하는 이 무참한 연책(連責)과 형벌의 굴레를 쓴 채로 그 하필 엄청난 그리스도를 안고 이 밤 검은 색 속으로 떨어져 버리고 싶어. -‘사야(邪夜)’에서-

    어둠에 묵혀 / 검정 피멍울은 삭힐지라도

    불의 도취(陶醉)와 타오르는 불빛의 / 포도주로 빚을지라도

    지내온 이적지의 인생은 / 미완(未完)의 시(詩)의

    허막(虛寞)한 초서(草書)일 뿐 -‘포도주’에서-

    돌 위에 돌을 누이자

    돌 위에 돌처럼 차가운 나를 누이자

    낙엽은 쌓여라 / 낙엽은 쌓여라 죽은 나비야

     

    그 위론 흰눈이 깔리고 연한 혈액처럼 붉은 노을은 흘러라

    꽃잎을 문 작은 시내처럼 흘러라. -‘낙엽은 쌓여라’에서-

    이 바람을 어이랴

    실바람 한 오락지 살갗에만 닿아도 사람내음에 젖은 머리털 한 움큼에 열 손가락 찔러넣듯, 진홍(眞紅)의 관능에 몸서리치며 내 미치네

    이적진 몰랐던 / 이리도 피가 달아진 일

    아아 바람에 바람에 이 살을 다 풀어 주어야 내가 살겠네. -범부(凡婦)의 노래 2-

    이미지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쉽게 다가가 공감(共感)할 수 없는 벽을 느낄 것이다. 이상의 시의 바탕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정서는 사랑에 대한 정열(情熱)이다. 따라서 연약한 여성 특유의 전통적인 시상(詩想)을 미리 예상했다면 ‘캄캄한 어둠의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한 거리감만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가 김남조가 평생 동안 일관성 있게 추구해 온 시의 세계이다.

    내 마음은 /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 드린다. -‘정념의 기’에서-

    내 마음은 한 폭의 깃발처럼 흔들리고 나는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시공의 깃발 아래에서 슬픔에 겨워 울기도 하고 간절히 기도 드리기도 한다.

    여기에서 깃발은 천상의 음악을 듣는 깃발이면서 현실 초극을 염원하는 절대자와의 만남을 예비한 일종의 ‘솟대’인 것이다. 이러한 지향점의 바탕은 가톨릭 정신이며 그것은 곧 화해(和解)와 구원(久遠)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아아 내 눈이 본

    가장 놀라운 빛으로

    몸이 빛나고

    영혼이 빛나는 너를

    죽도록의 내가 보고 싶은 마음도

    훗세상에 심어

    뿌리깊은 연분의 나무 될

    기도에 바치고 나면

    땅의 제일 먼 땅끝에까지

    너를 부르는

    한 목소리뿐이다. -‘아가’에서-

    전편에서 시적 화자는 '너 = 사랑'에 대한 아픔까지도 절대 후회하거나, 탓하지 않고 담담하게 수용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런 마음이 다음 생에까지도 이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이 시 화자의 '너'에 대한 진심은 참으로 경이롭다는 말로도 다 담을 수 없을 듯하다.

    따라서 '너=사랑'에 담겨진 뜻은 초월적·형이상학적인 의미로 확대·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겨울 바다’에서

    이 시는 절망과 좌절의 허무 의식을 종교적으로 극복하고 삶의 신념과 의지를 그린 작품이다.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설일’에서-

    이 시는 일상의 사물들에 대해 관조로부터 터득한 종교적 깨달음을 통하여 인생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는 변화를 그리고 있다. 눈 오는 날, 바람 부는 정경에서 발견한 ‘함께’라는 의미를 삶에 투영시키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자세를 다짐하고 있다.

    이상으로 미루어 볼 때, 김남조의 시의 세계에서 그가 지속적으로 추구한 ‘사랑’은 그의 삶의 이유이자 원동력인 가톨릭 정신, 곧 ‘화해와 구원’의 표상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는 곧 김남조가 생의 존재론적 탐구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의 발자취라 이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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