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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사랑하는 동안
부탁한 말은 하나뿐이다
처음 잔을 부딪쳐 별을 떨구며
약속한 말도 오직 하나뿐이다
"뒷 모습을 보이지 말기로 하자"
희미한 가로등 아래 몸부림치며
눈이 내릴 때
밑뿌리 들린 겨울나무처럼
어쩌면, 메마른 갯벌에 나뒹구는
한 줌 바람처럼
뒷모습은 슬프고 쓸쓸하였다
사랑은 끝이 있음을 이미 알지만
어느 날, 너와 나
뒷모습을 보이지 말기로 하자
그대 눈동자 속을 흐르는
천년의 수심 속으로
잎이 지듯 노을이 지듯
그냥 그렇게 지기로 하자
(그림 : 정인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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