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남 - 꽃이 졌다는 편지시(詩)/장석남 2014. 2. 3. 20:40
1
이 세상에
살구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
복숭아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
꽃이 만들던 그 섭섭한 그늘 자리엔
야윈 햇살이 들다가 만다고 쓰고
꽃 진 자리마다엔 또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
살구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
복숭아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
그러니까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써야 할까
내 마음 속에서
진 꽃자리엔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
다만
흘러 가는 구름이 보이고
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
달이 뜨면
누군가 아이를 갖겠구나 혼자 그렇게
생각할 뿐이라고
그대로 써야 할까
2꽃 진 자리에 나는
한 꽃 진 사람을 보내어
내게 편지를 쓰게 하네
다만
흘러 가는 구름이 잘 보이고
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
그 바람에
뺨을 기대보기도 한다고
나는 오지도 않는 그 편지를
오래도록 앉아서
꽃 진 자리마다
애기들 눈동자를 읽듯
읽어내고 있네(그림 : 류은자 화백)
'시(詩) > 장석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석남 - 배를 밀며 (0) 2014.05.18 장석남 - 개두릅나물 (0) 2014.02.16 장석남 - 배를 매며 (0) 2014.02.03 장석남 - 수묵(水墨)정원 -序 (0) 2014.01.28 장석남 - 수묵(水墨)정원 1 -강 (0) 2014.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