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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 가새각시 이야기시(詩)/손택수 2014. 2. 2. 10:12
사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고가메 북쪽으로 씨러들어 가면
그날은 영락없이 비가 내린다,
한마을 한집에서 칠십년을 산 할머니의 말씀이다
볕이 저렇게 짱짱하기만 한데
말리던 고추를 거둬들이시고 논에 물꼬를 보러 간다, 바지런을 떠시던 할머니
진남포로 만주로 대령으로 똘똘 구르마 타고 떠돌던 할아버지 먼저 보내신 뒤,
가위 점을 처던 날들이 있었다
가새각시 가새각시 영검하게 맞출라면 핑 돌아가고
영검하게 못 맞출라면 까닥도 말고 가만히 섰소
지어오린 밥상 앞에서 명주실에 매단 가새각시 빙글 춤을 출 때
나는 의심 어린 눈으로 할머니 손목을 시큰등 노려보곤 하였지만
요즘은 시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가새각시 통 말을 듣지 않는다고,
가새각시 작두날에 녹이 슬기 시작했다고,
걸음걸음 벌렸다 오무린 발을 다시 떼기조차 힘겹다는 당신
설 앞날 서른다섯 손주를 마당에 업고
포대기처럼 빙 두른 흙담 곁 채마밭에서 들려주신다
아가, 별이 달을 뽀짝 따라가는 걸 보면은 내일 눈이 올랑갑다
꼭 이런 날 늬 할아비가 오셨구나
박가분 품고 이날치 판소리 한 대목맹키 굽이치는 추월산 가마골을 한달음에 넘어오곤 하셨구나
가위를 매달던 명주실 올올 흰 눈이 뿌리는 밤 가윗날에 흰 눈이 싹둑싹둑 베어지는 밤 할머니
이제 가위점은 치지 않고 무덤 이야기만 들려주신다
가세 가세 일찌감치 떠난 할아버지 곁에 지어둔 가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한마을 한집에서 일흔 해를 살고 한몸에 여든 일곱 해를 머문 뒤의 일이다
(그림 : 이미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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