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련을 습관적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
목련나무 줄기는 뿌리로부터 꽃물을 밀어올리고
나는 또 서러운 눈물을 땅에 심었다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나는 버릴 수 있었지만
차마 나를 버리진 못했다
목련이 필 때쯤이면
내 병은 습관적으로 깊어지고
꿈에서마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흰 새의 날개들이 나무를 떠나듯
그렇게 목련의 흰 꽃잎들이
내 마음을 지나 땅에 묻힐 때
삶이 허무한 것을 진작에 알았지만
나는 등을 돌리고 서서
푸르른 하늘에 또 눈물을 심었다(그림 : 오유화 화백)
'시(詩) > 류시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류시화 - 바람부는 날의 꿈 (0) 2014.07.24 류시화 - 옹이 (0) 2014.07.24 류시화 - 봄비 속을 걷다 (0) 2014.01.27 류시화 - 나무 (0) 2014.01.11 류시화 - 낙타의 생 (0) 2014.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