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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상호 - 수몰 지구
    시(詩)/길상호 2014. 1. 25. 22:50

     

    물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을,

    나는 그 마을 이름도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물에 갇혀 있는 동안 모든 것이 허물어졌으므로

    별다른 이름이 그곳에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유물처럼 남은 돌담들,

    한때 가족의 삶을 지키던 성벽은 시퍼런 수압에 함락되고

    장독의 파편이며, 여물통, 절구통,

    저마다 훔푹 패인 가슴에 눈물을 담아

    차마 울음은 삼키고 있었습니다.

     

    피곤한 몸을 눕히던 구들장 아직도 반듯하게 햇살로 달구어져

    따뜻한 꿈을 꾸는 모양인데

    떠나간 사람들 모두 어디에서 행복할까요

     

    세월이 물때처럼 층층이 쌓이면 사람도 하나씩 허물어지고

    그들 또한 세월로 스미겠지요

    여름이면 집집이 그늘로 덮어 주던 나무들

    이제 뿌리도 썩고 애써 기억을 한 잎씩 붙여 놓아도

    피어나지 못한다는 것 알았습니다.

     

    장마가 지고 또다시 물 속에 갇히게 될 마을,

    그래도 아픈 상처마다 메꽃 줄기가 덮여 있었습니다.

    그 조그만 잎사귀들이 상처난 자리 손을 뻗어 어루만지며

    가끔 꽃망울로 울음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림 : 이정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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