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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뒤 그대는바람의 손을 잡고 안개 속으로 말달려가고
나무 그늘 아래 빈 몸으로 앉아 있는 내 귓가에선
무수히 작은 눈물로 부서지는 강물소리
겨울 강물소리
저물녘엔 강안의 갈대숲마저 깊숙이 가라앉히는
바라보면 즈믄 달이 알알이 맺혀 있는 것을
강이 처음 시작한다는 설산의 상류에서
내 천상의 도끼날로 모질게 마음 가다듬고
붉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어
물어 던지우니
허리에 구름 두르고 삼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석달열흘 가부좌틀고 기다려도
도무지 잠들지 않던 그대의 산에서
그대의 강으로 채 피다만 눈꽃 같은
내 사랑이 흘러간다
맑은 살결 부비며 아프게
산 밑둥이를 적시기도 하는, 지난 가을
그대 손끝에서 영글던 즈믄 달도 데불고
세상의 눈물 위를 지나 보이지 않는 꿈 곁도 지나
어디서 다다를지 흐르는 어둠 위에
나는 또 무엇을 버려야 하나
오늘도 그대는 안개 덮인 강 저편에 나가 있고
나는 발목에 피먹은 이슬 적시며
갈대숲 걸어걸어 이렇게
눈먼 강물 앞에 다시 섰다
(그림 : 한희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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