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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무 - 봄비
    시(詩)/이재무 2013. 12. 20. 12:54

     

    1.

    봄비의 혀가
    초록의 몸에 불을 지른다
    보라, 젖을수록
    깊게 불타는 초록의 환희
    봄비의 혀가
    아직, 잠에 혼곤한
    초록을 충동질한다
    빗속을 걷는
    젊은 여인의 등허리에
    허연 김 솟아오른다

     

    2.

    사랑의 모든 기억을 데리고 강가에 가다오
    그리하여 거기 하류의 겸손 앞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게 해다오
    살 속에 박힌 추억이 젖어 떨고 있다
    어떤 개인 날 등 보이며 떠나는 과거의 옷자락이
    보일 때까지 봄비여,
    내 낡은 신발이 남긴 죄의 발자국 지워다오

    3.

    나를 살다간 이여, 그러면 안녕
    그대 위해 쓴 눈물 대신 어린 묘목 심는다
    이 나무가 곧게 자라서
    세상 속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가지마다 그리움의
    이파리 파랗게 반짝이고
    한 가지에서 또 한 가지에로
    새들이 넘나들며 울고
    벌레들 불러들여 집과 밥을 베풀고
    꾸중 들어 저녁밥 거른 아이의 쉼터가 되고
    내 생의 사잇길 봄비에 지는 꽃잎으로
    붐비는, 이 하염없는 추회
    둥근 열매로 익어간다면
    나를 떠나간 이여, 그러면 그대는 이미
    내 안에 돌아와 웃고 있는 것이다
    늦도록 늦봄 싸돌아다닌 뒤
    내 뜰로 돌아와 내 오랜 기다림의 묘목 심는다

    (그림 : 안창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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