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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효근 - 새에 대한 반성문
    시(詩)/복효근 2013. 12. 12. 22:14

     

     

    춥고 쓸쓸함이 몽당빗자루 같은 날
    운암댐 소롯길에 서서
    날개소리 가득히 내리는 청둥오리떼 본다


    혼자 보기는 아슴찬히 미안하여
    그리운 그리운 이 그리며 본다


    우리가 춥다고 버리고 싶은 세상에
    내가 침 뱉고 오줌 내갈긴
    그것도 살얼음 깔려드는 수면 위에
    머언 먼 순은의 눈나라에서나 배웠음직한 몸짓이랑
    카랑카랑 별빛 속에서 익혔음직한 목소리들을 풀어놓는
    별, 별, 새, 새, 들, 을, 본다


    물 속에 살며 물에 젖지 않는
    얼음과 더불어 살며 얼지 않는 저 어린 날개들이
    건너왔을 바다와 눈보라를 생각하며
    비상을 위해 뼈 속까지 비워둔 고행과
    한 점 기름기마저 깃털로 바꾼 새들의 가난을 생각하는데


    물가의 진창에도 푹푹 빠지는
    아, 나는 얼마나 무거운 것이냐
    내 관절통은 또 얼마나 호사스러운 것이냐


    그리운 이여,
    네 가슴에 못 박혀 삭고 싶은 속된 내 그리움은 또 얼마나 얕은 것이냐


    한 무리의 새떼는 또
    초승달에 결승문자 몇 개 그리며 가뭇없는
    더 먼 길 떠난다 이 밤사
    나는 옷을 더 벗어야겠구나


    저 운암의 겨울새들의 행로를 보아버린 죄로
    이 밤으로 돌아가
    더 추워야겠다 나는
    한껏 가난해져야겠다

    (그림 : 조창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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