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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 대숲에서 뉘우치다시(詩)/복효근 2013. 12. 12. 22:09
바람 부는 대숲에 가서
대나무에 귀를 대보라.
둘째딸 인혜는 그 소리를 대나무 속으로 흐르는 물소리라 했다.
언젠가 청진기를 대고 들었더니 정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우긴다.
나는 저 위 댓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는 소리가
대나무 텅 빈 속을 울려 물소리처럼 들리는 거라고 설명했다.
그 뒤로 아이는 대나무에 귀를 대지 않는다.
내가 대숲에 흐르는 수천 개의 작은 강물들을
아이에게서 빼앗아버렸다.
저 지하 깊은 곳에서 하늘 푸른 곳으로 다시
아이의 작은 실핏줄에까지 이어져 흐르는
세상에 다시없는 가장 길고 맑은 실개천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바람 부는 대숲에 가서
대나무에 귀를 대고 들어보라
그 푸른 물소리에 귀를 씻고 입을 헹구고
푸른 댓가지가 후려치는 회초리도 몇 대 아프게 맞으며.
(그림 : 설종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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