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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영 - 175센치의 전복시(詩)/시(詩) 2021. 9. 10. 13:38
전복, 전철에 올라타 입 벌린 채 침 흘리는 전복. 꼭 사십오 년을 살았고, 차장 진급을 앞둔 전복. 이마 껍질이 약간 닳은
전복, 눈에 분비물이 자주 끼지만, 그래도 아직 탱탱하다고 칭찬받는 전복. 기본적인 양식을 갖춘, 거기서 양식되는 전복.
자기 속은 아무래도 안 보이고. 발랑 까진 것들을 곁눈질하며 옆구리에 혀를 차는 전복. 조금만 젊었어도 무능한 전복들
의 씨를 싸그리 말렸을 전복. 하지만 아무도 말릴 것 같지 않아 재빨리 눈길을 돌린 전복. 가쁜 숨을 삼키며 마른 입술을
핥는 전복. 고지혈증 판정을 받았지만 아직은 탱탱하다니까, 마음까지 신선한 전복. 다음날 아침이면, 자신의 먹을 죽이
나 쑤는 전복. 기쁜 우리, 전복.
(그림 : 고찬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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