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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에 핀
파리한 진달래꽃에게
어쩌려고! 라고 너무 다그치지 마라
꽃이 핀다는 것은 어쨌든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말이 되게 해 보려는 눈물겨운 안간힘
정말이지
모란이 지고 나면 그냥 그뿐인 일
뭘 좀 어찌해 보려고
쑥덕쑥덕 피는 말들과는 상관없이
꽃은 다만 어쩔 수 없어 핀다
시퍼런 당신들보다 더 무섭게 입 꾹 다물고 핀다
봐라
장미는 여왕이 되려고
불평 없이 가시방석에 앉아 있고
며느리밥풀꽃은 부엌데기로
찬밥 신세가 되고
아무 죄 없이 사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으니
벌써 오래전 게임이 끝난 줄 모른 채
끝까지 함구하고 있던
섭섭한 봄빛
시샘하지 마라
언젠가 당신 겨드랑이에도
어쩔 수 없는 꽃
불쑥 피는 날 있을 것이다
꽃들은
서로서로 꽃같이
핀다
(그림 : 김설화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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