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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호 - 콩나물국시(詩)/시(詩) 2020. 9. 2. 15:15
구두가 바뀐 줄도 모르고 콩나물국 끓는 냄새 속으로 달
려간다 배 속에 퍼지는 덜 익은 파 향기 끓는 물 속에서 지
워져 무엇 하나 낯설지 않은 저녁
오십 년 전 논두렁은 쇠부지깽이 콕콕 쑤셔 씨 콩알 하나
에 재 반 스푼 섞어 뒤꿈치로 콕 밟아주면 콩밭이 되었다
자고 나면 어느덧 불쑥 밀고 올라오는 힘이 논두렁을 부드
럽게 부풀려놓았다
개구리 자욱한 울음소리를 따라 파란 싹들 목 내밀면 아
서라! 너희들 몫이 아니다 개구리 얼씬 못하게 하얀 가루떡
대꼬챙이, 논두렁에 꽂아두면 되었다
메뚜기 등이 노릿해질 만하면 콩꼬투리 주렁주렁 매달
려 장아찌 콩잎 한 장에 밥술 넘어가는 소리, 딸랑거리는
빈 도시락 소리, 논두렁을 흔들었다
찬 이슬 머금은 콩된장에 두부를 꺼내놓고 생마늘을 다
지는 아내가 콩나물국을 끓이려나 보다 오십 년 동안 변하
지 않고도 늘 새로운 콩나물국을.
(그림 : 허영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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