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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옥 - 무쇠 맛시(詩)/시(詩) 2020. 8. 24. 19:52
엄마가 사는 김밥에선 언제나
무쇠 맛이 났다
날이 무디면 썰다가 터진다고
숫돌에 무쇠 칼을 갈았다
반짝이는 신제품 같은 칼을 제쳐두고
닳아진 손금이 손잡이에 옮겨 앉은
익숙한 칼만 고집하던 엄마
그 맛이 싫어 도시락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대문을 나셨을 때
잰걸음으로 따라 나와 끌어다 앉혀놓고서는
새로 만 김밥을 소에 익지 않은 스텐 칼로
서툴게 썰어 다시 싸주셨다
첫딸이 소풍 가는 날 김밥을 싸는데
엄마 생각 많이 난다
아이를 보내고 들어와
물려받은 무쇠 칼을 꺼내
남은 한줄 김밥을 싼다
김밥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데
무쇠 맛이 퍼진다
엄마 돌아가신 후 처음 느껴보는 엄마 맛
소풍간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입을 헹구지 않았다
(그림 : 전명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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