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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아 - 진달래 화전을 기억하다시(詩)/시(詩) 2020. 2. 12. 12:39
앞산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꽃봉오리마다 불씨가 들어있었던 모양이다
성냥을 확 그은 듯 꽃망울이 탁탁 터진다
나는 상비약처럼 보관하고 있던
녹빛 프라이팬을 꺼낸다
기꺼이 화로가 될 수 있을 거 같다
진달래와 나 사이에 흐르는 기름
우리는 끈적끈적했던 날들을 프라이팬에 붓는다
지지지직, 지지지직
산 하나, 마을 하나가 향기 주머니를 푼다
꽃술마다 점점이 박혀 있는 흑점 같은 기억들
앞으로 철썩
뒤로 처얼썩
뒤집기를 반복한다
내가, 산이, 작은 동네가
퍼져 나오는 향기에 노릇하게 익어간다
반죽 위로 편편하게 꽃잎을 띄운다
곧 구순기의 몸을 더듬거릴 진달래 화전
딱! 이만큼만 하겠다
기억이 너무 뜨거워졌다(그림 : 박승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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