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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미 - 굴레방다리시(詩)/시(詩) 2020. 1. 9. 12:54
아현동 굴레방다리 하면 목줄이 떠오른다
둥근 모양이 세 개나 들어가는 아현동이란 지명이
입 벌린 사람들의 모습 같아서, 그들의 허기진 뱃속 같아서,
소가 벗어놓고 와우산으로 누웠다는 굴레가
골목 어디쯤에선가 나타나
기다렸단 듯이 목을 거칠게 잡아챌 것만 같은 동네
흑백 사진 속 배경으로 만나는 그곳에서
부모님의 목줄 덕으로 어렵게 대학까지 마쳤다
가난은 꿈도 사치라는 말을 배웠지만
철수된 고가 다리처럼 빠져나와 모두가 잘살고 있다
날마다 걷던 웨딩드레스 거리는 왜 그렇게도
퇴락한 슬픔이었는지,
조화롭지 못한 방석집과 한데 나열되어
흰빛이 눈처럼 순백색이 아닌 술집 여자들의 덧칠된 화장처럼
이물스러웠던 기억
밀폐된 어둔 공간을 찾아들던 검은 양복 입은 남자들의 술 취한 모습과
그들의 손을 잡아끌던 눈빛을 읽을 수 없는
표정이 화려한 여자들과 마주칠 때면
그녀들이 입을 먼 미래의 웨딩드레스가 궁금해지곤 했다
눈부신 조명 아래 여전히 웨딩 타운으로 화려한 동네
이따금 생각나는 곳이지만 그와 동시에 목부터 죄어드는 곳,
모두가 치열했던 시절이 재개발된 모습으로 지워졌다
하지만 아현동 굴레방다리란 발음 속에서 여전히 되살아나는
허기와 굴레
굴레방다리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163번지
서대문구 북아현동 163번지 남쪽 사거리에 있던 다리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큰 소가 길마는 무악에 벗어 놓고, 굴레는 이곳에 벗어 놓고,
서강을 향하여 내려가다가 와우산에 가서 누웠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한자명으로 늑교(勒橋)라고 하였다. 하천이 복개되면서 없어졌다.
(그림 : 김정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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