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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석본 - 가을의 의성어
    시(詩)/시(詩) 2019. 11. 12. 15:34

     

     

    가을날 산을 오르면 나무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쓸쓸, 나무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

    쓸쓸, 쓸쓸,

    아니, 나무와 바람이 주고받는 말

    아니다 낙엽이 스치는 소리다.

    좀 더 귀를 기울여 봐

    나무와 잎과 바람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울리는 소리다.

    쓸쓸, 쓸쓸, 쓸쓸

     

    우리가 처음 손잡았던 그 가을날 저녁

    어둠 속에서 떨리던 너의 목소리,

    ‘사랑한다는 것은 쓸쓸함을 나누는 것이야, 쓸쓸함의 체취를 주고받는 것이야’

    그때는 혼돈의 말이었지.

     

    이제야 들려온다, 너의 쓸쓸함이 내게로 건너온다. 가을엔 나무와 잎, 나무와 나무, 잎과 잎,

    숲과 하늘의 경계가 바스러져 서로를 넘나든다. 서로를 지우고 있다. 바야흐로 명료한 하나의

    세상이다. 존재의 몸들이 지워진 다음, 몸 없는 존재가 투명하게 일어서고 있다. 소리로 울려

    오던 쓸쓸함이 나무처럼 일어서고 잎처럼 팔랑이고 드디어 눈물처럼 영혼의 계곡을 흐른다.

     

    쓸쓸, 쓸쓸, 쓸쓸, 쓸쓸

    너와 나와 바람에게서 울려오는 가을의 의성어다.

    (그림 : 김성실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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