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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만 - 어떤 음계에서시(詩)/시(詩) 2019. 9. 22. 13:51
자주 자는 집은 컨테이너이거나 달세를 주는 여관방,
자주 먹는 밥은 함바집의 백반이었던 그가
삼십년 객짓밥으로 얻은 만년 셋방에 곰팡이꽃을 피워놓고
밥상을 차려 기다렸다
늘 막막했던 그가 용돈까지 쥐어준다
‘아무려면 혼자 사는 내가 낫지’가 그의 잠언
창을 열면 집 밖도 실내인 작은 집
소소한 몇 개의 반찬 냄새는 이 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빗방울은 허공에 걸린 거미줄을 튕긴다
이십오년 된 창고형 상가를 털어 칸칸이
허술한 담을 쌓고 그것을 아파트라 부르는 곳에
그가 살고 있다 그는 살 수 있었다
그가 만든 수많은 집들의 바깥에서만
빗방울을 견디는 거미줄, 오로지 가볍고 질긴 장력으로
살았던 탁음이 깊은 말라깽이 사내의 집
복도엔 그만그만한 사람들의 생이 얽힌 물발자국
발바닥으로 부르는 노동가, 따라 부르기 버거워
어떤 음계에서 나는 미끄러지고 만다
(그림 : 변응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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