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旭日阳刚组合 - 春天里(农民工翻唱)외국/s 2013. 10. 22. 21:53
还记得许多年前的春天
아직 몇년 전의 봄날을 기억하고 있어요.那时的我还没剪去长发
그땐 아직 긴 머리를 자르기 전이었었죠.
没有信用卡也没有她신용카도 없고 그녀도 없었고,
没有24小时热水的家24시간 뜨거운 물이 나오는 집도 없었죠.
可当初的我是那么快乐하지만 그때 난 참 즐거웠어요.
虽然只有一把破木吉他낡은 기타 하나 뿐이었지만,
在街上在桥下在田野中거리에서 다리 밑에서 들판에서
唱着那无人问津的歌谣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불렀었죠.
如果有一天我老无所依만약 어느날 내가 늙어 의지할 곳 없게 되더라고
请把我留在在那时光里그 시절속에 머물게 해주세요.
如果有一天我悄然离去만약 어느날 내가 소리없이 여길 떠나더라도
请把我埋在这春天里
날 봄날 그 시절에 묻어주세요.
还记得那些寂寞的春天아직 그 외롭던 봄날을 기억하고 있어요.
那时的我还没留起胡须그때 난 아직 수염도 자라지 않았죠.
没有情人节也没有礼物발렌타인 데이도, 선물도 없었고,
没有我那可爱的小公主내 곁에 어여쁜 공주님도 없었죠.
可我觉得一切没那么糟
하지만 난 그땐 풀이 죽어있진 않았어요.虽然我只有对爱的幻想
다만 사랑에 대한 환상만 갖고 있었죠.
在清晨在夜晚在风中아침에 밤중에 바람속에서
唱着那无人问津的歌谣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죠.也许有一天我老无所依
역시 언젠가 내가 늙어 의지할곳 없어지더라도请把我留在在那时光里
나를 그 시절 속에 머물게 해주세요.
如果有一天我悄然离去만약 어느날 갑자기 내가 여길 떠나더라도,
请把我埋在这春天里
그때 그 봄날 속에 나를 묻어주세요.
凝视着此刻烂漫的春天지금은 따듯한 봄날을 바라보고 있어요.
依然象那时温暖的模样그때의 그 따뜻한 모습이 여전하네요.
我剪去长发留起了胡须난 머리도 길었고 수염도 길었어요.
曾经的苦痛都随风而去예전의 그 고통은 바람따라 흘러가버렸어요.
可我感觉却是那么悲伤다만 나의 마음을 슬픔을 느끼고 있어요.
岁月留给我更深的迷惘세월이 흘러가면서 더 많은걸 잃어버리게 되었어요.
在这阳光明媚的春天里지금은 이 화창한 봄날을 앞두고 있어요.
我的眼泪忍不住的流淌
나의 눈에 눈물을 마를 수가 없게 계속 흘러내리네요.也许有一天我老无所依
역시 언젠가 내가 늙어 의지할곳 없어지더라도请把我留在在那时光里
나를 그 시절 속에 머물게 해주세요.
如果有一天我悄然离去만약 어느날 갑자기 내가 여길 떠나더라도,
请把我埋在这春天里
그때 그 봄날 속에 나를 묻어주세요.
如果有一天我老无所依만약 어느날 내가 늙어 의지할 곳 없게 되더라고
请把我留在在那时光里그 시절속에 머물게 해주세요.
如果有一天我悄然离去만약 어느날 내가 소리없이 여길 떠나더라도
请把我埋在这春天里
날 봄날 그 시절에 묻어주세요.春天里
봄날 그 시절에
“어느날내가 늙어 의지할 곳 없게 되더라도
과거 행복했던 시간 속에 머물게 해줘,
어느 날 내가 소리없이 떠나게 되면
나를 봄 안에 묻어줘…”
2평 남짓한 남루한 방 안에서
머리를 빡빡 깎은 두 남자가 웃통을 벗고 기타를 치며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중국의 유명 록가수 왕펑의 <봄에>라는 노래다.
빈 맥주병이 굴러다니고, 두 남자의 눈가도 취기로 불그레하다.
29살 류강과 44살 왕쉬, 꿈을 품고 베이징에 왔으나 남루한 생활에 지친
농민공 (농촌호구로 등록돼 있는 도시의 저임금 노동자) 들이다.
9월 어느 날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가 이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휴대 전화로 찍어 인터넷에 올렸고,
그 다음 날 무려 20만명이
이 초라한 ‘뮤직비디오’를 클릭해 들었다.
인터넷에는 이들 농민공의 노래를 듣고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했다’는 내용의 사연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들은 11월 초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의 재능 경연 프로그램인
‘싱광다다오’에 출연해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1등을 했다.
14일에는 가수 왕펑의 콘서트에 초대 받아 8만 관중들의 열광 속에
왕펑과 함께 <봄에>를 불렀다.
중국 대륙이 농민공의 애환을 상징하는
이들 무명가수의 노래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헤이룽장성 출신의 류강은 2002년 군대를 제대한 뒤
아파트 경비원 등으로 일하다 베이징으로 올라왔다.
록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2003년 용기를 내 지하철역 통로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노래를 들은 행인들이 주는 돈으로 생활하지만
월 400위안(약 7만원)의 방값도 내지 못할 때가 많아
아내와 세살 아들은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왕쉬도 10년 전 허난성 상치우에서 베이징으로 와
보일러실 노동자, 과일 행상 등 온갖 일을 하다가
현재는 제약회사 창고에서 일하며 한달 1500위안(약 26만원)을 벌어 아들과 함께 생활한다.
젊은 시절 밴드활동을 하기도 했던 그는
주말마다 지하철역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
2005년 지하철 역 통로에서 나란히 연주를 하다
알게 된 두 사람은 우정을 맺었고, 둘의 이름을 딴 ‘쉬르양강’이란
그룹을 만들어 함께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빈부 격차 해소를 선언한 중국 당국도 감동의 대열에 합류했다.
후난성 공산당 서기 저우창은 이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 범벅이 된다”며
“관리들은 이런 민중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인민일보>는 15일
“이들의 노래가 마음을 움직이는 건 사회 밑바닥 농민공들의 적나라한 삶이 사람들의 가장 민감한 곳을 울리기 때문”이라는 글을 실었다.
‘벼락 스타’가 됐지만 류강과 왕쉬는 여전히 가난한 농민공 그대로다.
류강은 중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이들은 노래를 부르지만 우리가 부르는 것은 생활, 진짜 생활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진 것 같다”고 했다. 왕쉬는 “가장 큰 소원은 노래에 나오는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늙어서 의지할 곳 없는 처지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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