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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사인 -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시(詩)/김사인 2014. 10. 30. 00:47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
    오갈 데 없는 그 처자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 가지
    그 처자 볕에 그을어 행색 초라하지만
    가슴과 허벅지는 소젖보다 희리


    그 몸에 엎으러져 개개 풀린 늦잠을 자고
    더부룩한 수염발로 눈꼽을 떼며
    날만 새면 나 주막 골방 노름판으로 쫓아가겠네
    남는 잔이나 기웃거리다
    중늙은 주모에게 실없는 농도 붙여보다가
    취하면 뒷전에 고꾸라져 또 하루를 보내고
    '나 갈라네' 아무도 안 듣는 인사 허공에 던지고
    허청허청 별빛 지고 돌아오겠네


    그렇게 한두 십년 놓아 보내고
    맥없이 그 처자 몸에 아이나 서넛 슬어놓겠네
    슬어놓고 나 무능하겠네
    젊은 그 여자
    혼자 잉잉거릴 뿐 갈 곳도 없지
    아이들은 오소리 새끼처럼 천하게 자라고
    굴 속같이 어두운 토방에 팔 괴고 누워
    나 부연 들창 틈서리 푸설거리는 마른 눈이나 내다보겠네
    쓴 담배나 뻑뻑 빨면서 또 한 세월 보내겠네


    그 여자 허리 굵어지고 울음조차 잦아들고
    두 눈에 파랗게 불이 올 때쯤
    나 덜컥 몹쓸 병 들어 시렁 밑에 자리 보겠네
    말리는 술도 숨겨놓고 질기게 마시겠네
    몇 해고 애를 먹어 여자 머리 반쯤 셀 때
    마침내 나 먼저 숨을 놓으면
    그 여자 이제는 울도 웃도 못하리
    나 피우던 쓴 담배 따라 피우며
    못 마시던 술이나 배우리 욕도 배우리

    이만하면 제법 속절없는 사랑 하나 안 되겠는가
    말이 될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림 : 차명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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