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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성해 - 술도가가 있는 골목
    시(詩)/문성해 2014. 9. 21. 22:29



    산사춘 복분자 오가피주 백세주 매실주는 물론이거니와
    막걸리 한 병을 마시다가도 그 병을 들어 만든 곳을 확인하는 일
    그때마다 나는 경상북도 문경의
    어느 오래된 술도가 골목을 더듬더듬 헤매지도 않고 흘러들어가게 된다  


    산사나무 열매나 복분자 오가피 냄새와
    시큼덜큰한 막걸리 냄새가 흘러나오는 그 골목을 찾아들면
    누런 냄새 위에 쓰러져 누운 술꾼이 있고
    술지게미를 얻어먹고 비틀거리는 개가 있고
    삐끔 열린 솟을대문 안에는 조금쯤 요망한 자세로 누워 깔깔거리는 여자들이 있다


    어느새 나는 노란 한되들이 술 주전자를 들고
    한모금 두모금 마시며 가는 간 큰 애가 되어
    미나리꽝이나 앞산이나 저수지가 타박타박
    내 눈 속을 아프지도 않게 걸어들어오는 것을 보며
    하늘과 땅과 마을과 들판 중에서도 내가 참 크다 하고
    돌아앉은 뒷산도 그때만큼은 내 편이란 생각을 하며
    이런 술도가가 있는 우리 마을을 내가 참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옆집 새댁이 내는 스란치마 소리처럼
    조금쯤 은밀하고
    조금쯤 세상에서 붕 떠나 있는
    그 술도가 골목을 어린 나는 어미의 품처럼 파고들었으니
    지금도 술을 받아놓고 술병을 들고 소재지를 확인하는 나는
    술 한잔 마시지 않고도
    어느새 그 많은 술도가를 다 편람한 듯 마음이 화끈해지고
    그 골목에서 술꾼들의 오줌을 다 받아먹고 사는 맨드라미 모양
    너도 나도 이해할 수 있는 수굿한 고개가 되곤 한다

    (그림 : 김주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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