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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랑(金永郎)
    시(詩)/김영랑 2014. 4. 13. 11:25

    김영랑 김영랑(金永郎)1903∼1950. 시인.

    본관은 김해(金海). 본명은 윤식(允植). 영랑은 아호인데 ≪시문학 詩文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전라남도 강진 출신. 아버지 종호(鍾湖)와 어머니 김경무(金敬武)의 5남매 중 장남이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혼인하였으나 1년반 만에 부인과 사별하였다.

    그뒤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난 다음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이 때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때 휘문의숙에는 홍사용(洪思容)·안석주(安碩柱)·박종화(朴鍾和) 등의 선배와 정지용(鄭芝溶)·이태준(李泰俊) 등의 후배, 그리고 동급반에 화백 이승만(李承萬)이 있어서 문학적 안목을 키우는 데 직접·간접으로 도움을 받았다.

    휘문의숙 3학년 때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하였다. 이무렵 독립투사 박렬(朴烈)·박용철(朴龍喆)과도 친교를 맺게 되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향리에 머물면서 1925년에는 개성출신 김귀련(金貴蓮)과 재혼하였다. 광복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하기도 하였다.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평소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국악이나 서양명곡을 즐겨 들었고, 축구·테니스 등 운동에도 능하여 비교적 여유있는 삶을 영위하다가, 9·28수복 당시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시작활동은 박용철·정지용·이하윤(異河潤) 등과 시문학동인을 결성하여 1930년 3월에 창간된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칠수 四行小曲七首>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후 ≪문학≫·≪여성≫·≪문장≫·≪조광 朝光≫·≪인문평론 人文評論≫·≪백민 白民≫·≪조선일보≫ 등에 80여편의 시와 역시(譯詩) 및 수필·평문(評文) 등을 발표하였다. 그의 시세계는 전기와 후기로 크게 구분된다. 초기시는 1935년 박용철에 의하여 발간된 ≪영랑시집≫ 초판의 수록시편들이 해당되는데, 여기서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인생태도에 있어서의 역정(逆情)·회의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슬픔’이나 ‘눈물’의 용어가 수없이 반복되면서 그 비애의식은 영탄이나 감상에 기울지 않고, ‘마음’의 내부로 향해져 정감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요컨대, 그의 초기시는 같은 시문학동인인 정지용 시의 감각적 기교와 더불어 그 시대 한국 순수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940년을 전후하여 민족항일기 말기에 발표된 <거문고>·<독(毒)을 차고>·<망각 忘却>·<묘비명 墓碑銘> 등 일련의 후기시에서는 그 형태적인 변모와 함께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죽음’의 의식이 나타나 있다.

    광복 이후에 발표된 <바다로 가자>·<천리를 올라온다> 등에서는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의욕을 보여주고 있는데, 민족항일기에서의 제한된 공간의식과 강박관념에서 나온 자학적 충동인 회의와 죽음의식을 떨쳐버리고, 새나라 건설의 대열에 참여하려는 의욕으로 충만된 것이 광복 후의 시편들에 나타난 주제의식이다.

    주요저서로는 ≪영랑시집≫ 외에, 1949년 자선(自選)으로 중앙문화사에서 간행된 ≪영랑시선≫이 있고, 1981년 문학세계사에서 그의 시와 산문을 모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다. 묘지는 서울 망우리에 있고, 시비는 광주광역시 광주공원에 박용철의 시비와 함께 있으며, 고향 강진에도 세워졌다.

    참고문헌

    • 『한국현대문학사탐방』(김용성, 국민서관, 1973)
    • 『한국현대시인연구』(김학동, 민음사, 1977)
    • 『전형기의 한국문예비평』(김용직, 열화당, 1979)
    • 『모란이 피기까지는』(김학동 편, 문학세계사, 1981)
    • 「시와 감상-영랑과 그의 시-」(정지용, 『여성』, 1938.9·10.)
    • 「조밀한 서정의 탄주-김영랑론-」(정한모, 『문학춘추』, 1964.2.)

    (김영랑생가)

     

    김영랑(1903~1950)의 시 44, 바람따라 가지오고 머러지는 물소리는 영랑 나름대로 물에 대한 명상을 노래한 시이다. 이 시는 한복을 입은(실제로 영랑이 한복을 입은 사진이 남아 있음) 전통적인 남성이 다소 점잖은 어조로 산골을 흐르는 물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시이다. “흘러보지, 쉬어가지, 못할소냐, 보노니등의 고아한 말투에서 전통적인 어조를 읽을 수 있다. 이 시의 형식을 보면 12행으로 되어 2행씩 대구(對句) 형식으로 서로 쌍을 이룬다. 내용을 보면 전반 6행까지는 흐르는 물소리에 대해 흐르지 말라거나 소리를 내지 말라는 부정적인 어조를 보이다가 후반 7행부터 12행까지는 물에 대한 긍정적인 어조로 바뀌면서 이 시에서 말하는 사람 목소리의 색깔(tone)이 달라진다.

    1행의 바람따라 가지오고 머러지는 물소리부터 살펴보면 물소리가 바람 소리에 따라서 가까이에서 들리는 듯도 하고 멀리서 들리는 듯도 하다는 것이다. 바람 소리가 크면 가까이에서 물소리가 크게 들리고 바람 소리가 작으면 물소리는 멀어지면서 작게 들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이 드러나는데 하나는 영랑만의 고유한 시어라고 말할 수 있는 새 단어의 등장이다. 시인 영랑은 자신만의 말을(필자의 견문이 좁은 탓도 있지만) 만들어 쓰거나 말을 자신만의 용법으로 사용하고 있음이 눈에 뜨인다. ‘가지오고가까이 오고의 사투리라고 볼 수 있지만 향미론향미+롭다라는 단어를 차용한 것인데, 사전의 뜻을 보면 “1. 향미(香味): 명사음식의 향기로운 맛, 2. 향미(鄕味):명사시골에서 사는 맛표준국어대사전이다. 문맥으로 보면 시골에서 사는 맛의 뜻보다는 음식의 향기로운 맛 쪽의 뜻에 가깝게 보인다. 그리고 명사이므로 접사 롭다가 붙어 향기로운 맛을 내다란 새로운 뜻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는 1행에서 비유법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무심코 지나치면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할 때 바람 따라 물소리가 가까이 온다.”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보통은 바람 따라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작게 들린다.”라고 하지 물소리가 가까이 온다, 멀어진다.”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표현의 차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비유적 표현

    일상적 표현

    바람 따라 물소리가 가까이 온다

    바람 따라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바람 따라 물소리가 멀어진다

    바람 따라 (물소리가) 작게 들린다

    그러면 물소리는 무슨 소리에 비유되고 있을까? 소리가 가까이 온다는 표현은 마치 군대가 행진할 때 나는 군화 발소리나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할 때 나는 소리 같다. 1, 2행에 나타난 비유를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물의 흐름

    사람의 발걸음

    바람 따라 물소리가 크게 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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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가까워지는 발소리

    바람 따라 물소리가 작게 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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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멀어지는 발소리

    물소리가 바람같이 흐름을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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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고 쉼

    바람의 세기에 따라 나는 물 흐르는 소리는 사람의 발걸음에 비유된다. 사실 구분하기가 좀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물소리가 작아진다.”거나 물소리가 커진다.”고는 하지만 물소리가 가까이 온다, 멀어진다, 쉰다.”라는 표현은 일상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비유가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비유로서는 좀 약한 비유법이다.

    3, 4행의 흐름도 가득찰랑 흐르다가/ 더러는 그림가치 머물럿다 흘러보지를 보면 3행에서는 물이 흘러서 (강바닥이) 가득해지도록 부지런히 흐르라는 청유형이고 4행은 그림같이 머물러 흐르지 말라는 청유형이다. 3행에서는 흐르라고 권유하면서 4행에서는 더러는 그림처럼 정지하면서 쉬라고 권유한다.

    5, 6행의 밤도 골 쓸쓸하이 이 한밤 쉬여가지/ 어느뉘 꿈에든셈 소리업든 못할소냐에서는 산골의 밤이 쓸쓸한데 이 한밤 쉬어가라고 물에게 친구처럼 권유하고 있다. 물에게 벗 하기를 권유하는 속사정은 나그네의 쓸쓸함 때문임이 이 구절에서 묻어난다. 나그네가 산골의 밤을 맞아 들리는 소리라고는 자신의 발걸음 소리와 물소리뿐인 것 같다. 나그네 화자는 자신에게 벗이 절실하게 필요한 만큼 흐르는 물에게 계속 함께 쉬자고 청한다. 바람같이 쉬거나(2), 그림같이 머물러 보거나(4), 어느 누구의 꿈에 든 셈으로 물소리를 내지 말아보라는(6) 흐름의 정지에 대한 강제적인 요청(?)까지 하게 된다. 여기서 물이 소리를 내지 않으려면 물이 흐르지 않아야 하므로 물의 흐름을 멈추고 싶은 마음에 물의 흐르는 소리를 내지 않게 할 수 없냐는 다소 억지스런 요구를 하게 된다. 그만큼 나그네의 쓸쓸함이 심한 상태인 것을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전반부에서 물소리를 나그네 화자의 발걸음 소리와 등가적으로 비유하면서 같이 산골의 밤을 머물러 지내자고 계속 권유한다.

    이 시의 하반부인 7, 8행에서는 새벽 잠결에 언듯 들리여/ 내 무건머리 선듯 싯기우느니라고 말하면서 나그네 화자의 속내가 드러난다. 즉 그는 깊은 고민에 싸여 쓸쓸한 산골에 들어와 밤을 쉬어가게 되었다는 뜻을 슬쩍 비친 것이다. 물에게 함께 쉬어가자는 권유를 하다하다 못하여 혼자 잠이 들었는데 새벽 잠결에 언뜻 들리는 물소리는 나그네 화자의 무거운 머리를 선뜻 씻기운다는 것이다. 여기서 산골의 물이 나그네의 권유를 듣지는 않았지만 그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벗의 역할은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일상은 항상 자잘하거나 커다란 고민거리로 가득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밤새 고민하거나 고민 속에 잠을 자면 새벽에 그 고민의 해답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것은 개인의 무의식 속에 있는 잠재의식이랄까, 집단 무의식이 그의 의식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고민을 함께 풀어주기 때문이다. 흔히 그런 집단 무의식의 도움을 우리는 전통적으로 조상이 도왔다고도 하고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신이 도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각종 종교가 그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9, 10행의 황금 소반에 구슬이 굴럿다/ 오 그립고 향미론 소리야에서는 산골의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니 시인을 바윗덩어리처럼 짓눌렀던 무거운 머릿속이 가벼워지고 맑아져서 물소리는 황금 소반에 구슬이 구르는 소리로 새롭게 들린다. 이 비유는 동양적이고도 전통적 비유로서 황금과 구슬의 만남은 아주 고귀한 대상을 표현할 때 써 왔는데 너무 많이 써서 비유의 희소가치는 좀 옅어진 듯하다. 여기서는 황금 소반에 구슬이 구르듯 산골의 강에서 향기로운 물이 흐른다는 비유가 성립된다. 즉 물소리는 구슬이 구르는 소리이고 황금 소반은 산골의 자연 그대로의 강을 나타낸다. 이런 표현도 다분히 전통적인 비유이기는 하다.

    일반적으로 고운 목소리를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은쟁반이 아니라 황금 소반에 굴러가는 구슬[]의 소리라고 표현하므로 나그네 화자가 이 순간에 들었던 물소리가 얼마나 아름답게 들렸는지를 알 수 있다.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눌렀던 무거운 고민을 해소시켜 주는 물소리는 단순한 물소리가 아니라 그립고 향미로운 소리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구슬이 구르듯 아름답고 향기로운 맛까지 난다는 표현에서, 말하는 이의 산골 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알 수 있다. 전반부에서 산골 물을 쓸쓸한 산골에서의 동무로 삼고 싶었다가 이번에는 그립고 향미롭기까지 한 벗으로 느끼는 것이다.

    나그네 화자는 흐르는 물의 정체를 알고 싶기도 하고 흐르는 강물을 벗하고 싶기도 하여 11, 12행에 오면 물아 거기좀 멈췃스라 나는 그윽히/ 저 창공의 銀河萬年을 헤아려보노니라고 외친다. 사람이 사는 100년 세월보다 더 오랫동안 흘러왔던 강물의 흐름은 저 밤하늘에 빛나는 은하 만년의 세월을 함께 논할 벗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나그네 화자의 맑은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이제 말하는 이는 개인적 고민에 짓눌려 무거운 머리를 안고 있는 나그네가 아니라 저 창공의 은하 만년을 헤아려 보고 폭 넓고 오래된 자연의 지혜를 생각할 줄 아는 인생의 나그네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시에서는 이렇듯 물의 꾸준히 흐르는 지속성과 성실성과 진실성을 담은 맑은 지혜를 벗하고 싶은 시인의 바람을 읽게 된다.

    한편으로 시인 영랑은 중국의 철학자 노자(老子)의 벗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를 읽으면 노자가 말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노자의 사상에서, 물을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으로 여기어 이르던 말.”표준국어대사전라는 말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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