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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 산동네에 오는 눈시(詩)/신경림 2014. 2. 10. 10:10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동네라서
눈도 제일 먼저 온다
깁고 꿰매고 때워 누더기가 된
골목과 누게막과 구멍가게 위에
눈은 쌓이고 또 쌓인다
때로는 슬레이트 지붕 밑을 기웃대고
비닐로 가린 창틀을 서성대며
남 볼세라 사랑놀음에 얼굴도 붉히지만
때와 땀에 찌든 얘기
피멍 든 노래가 제 가슴 밑에서
먹구렁이처럼 꿈틀대는 것도 눈은 안다
이 나라의 온갖 잘난 것들 모여들어
서로 찢고 발기고
마침내 저네들 발붙이고 사는
땅덩이마저 넝마로 만든
장안의 휘황한 불빛을 비웃으면서
눈은 내리고 또 내린다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동네라서
눈도 제일 오래 온다
(그림 : 김종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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