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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희덕 -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시(詩)/나희덕 2014. 1. 2. 11:41

     

     

    해질 무렵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당신은 성문 밖에 말을 잠시 매어 두고
    고요히 걸어 들어가 두 그루 나무를 찾아보실 일입니다

     

    가시 돋힌 탱자울타리를 따라가면
    먼저 저녁해를 받고 있는 회화나무가 보일 것입니다
    아직 서 있으나 시커멓게 말라버린 그 나무에는
    밧줄과 사슬의 흔적이 깊이 남아 있고
    수천의 비명이 크고 작은 옹이로 박혀 있을 것입니다

     

    나무가 몸을 베푸는 방식이 많기도 하지만 하필
    형틀의 운명을 타고난 그 회화나무,
    어찌 그가 눈 멀고 귀 멀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의 손끝은 그 상처를 아프게 만질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더 걸어가 또다른 나무를 만나보실 일입니다
    옛 동헌 앞에 심어진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 드물게 넓고 서늘한 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회화나무를 잊은 듯 웃고 있을 것이고
    당신은 말없이 앉아 나뭇잎만 헤아리다 일어서겠지요

     

    허나 당신, 성문 밖으로 혼자 걸어나오며
    단 한번만 회화나무 쪽을 천천히 바라보십시오
    그 부러진 나뭇가지를 한번도 떠난 일 없는 어둠을요
    그늘과 형틀이 이리도 멀고 가까운데
    당신께 제가 드릴 것은 그 어둠뿐이라는 것을요

     

    언젠가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를 걸어보실 일입니다

    해미읍성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소재한 조선시대의 읍성. 사적 제116호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읍성이란 읍을 둘러싸고 세운 평지성으로 해미읍성 외에 고창읍성, 낙안읍성 등이 유명하다.

    해미읍성은 조선 성종 22년, 1491년에 완성한 석성이다.

    둘레는 약 1.8km, 높이 5m, 총면적 196,381m²(6만여 평)의 거대한 성으로 동,남,서의 세 문루가 있다.

    최근 복원 및 정화사업을 벌여 옛 모습을 되찾아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조선말 천주교도들의 순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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