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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하 - 부치지 못한 다섯개의 엽서
    시(詩)/이정하 2013. 12. 11. 12:55

     

     

     

    하나. 

    마음속 서랍에는 쓰다가 만 편지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그대에게 내 마음을 전하려고 써내려가다가, 다시 읽어보고는 더이상 쓰지 못한 편지.

    그대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내 마음 한 조각을 떼어내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아는지요? 밤이면 밤마다 떼어내느라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고마는 내 마음을

     

    둘.

    아침부터 소슬히 비가 내렸습니다.

    내리는 비는 반갑지만 내 마음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고여듭니다.

    정말 이럴때 가까이 있었더라면 따뜻한 커피라도 함께 할 수 있을텐데.

    저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할텐데.

    누군가를 사랑하다는 것은 이렇듯 쓸쓸한 일인가 봅니다.

     

    셋.

    다른 사람과 함께 나란히 걷고 있는 그대를 우연히 보았던 날,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미소지었습니다.

    애당초 가까이 가지도 못했기데 아무런 원망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몇 걸음 떨어져 그대를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팔짱을 낀 채 근처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내겐 아픔이었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까르르대며 웃는 그대의 모습을

    카페의 창문으로 훔쳐보는 것이 내겐 또 말할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아아, 그대는 꿈에도 몰랐겠지요.

    그날 밤은 내게 있어 가장 춥고 외로운 밤이었다는 것을

     

     

    넷.

    그렇습니다. 그대를 그리워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일 입니다.

    그대를 잊지못해 괴로워하는 것도 나 혼자만의 일 입니다.

    그러니 그대가 마음 쓸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 혼자 그리워하다 나 혼자 괴로워하면 그만, 그대는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무덤덤해도 됩니다.

    애초에 그대에게 짐이 될 생각이 있었다면 나는 내 사랑을 슬며시 들킬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대여, 나로 인해 그대가 짐스러움을 느낀다면 그 자체가 내게는 더한 괴로움이기에

    나 혼자만 그대를 사랑하고 나 혼자만 괴로워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그대여, 그대는 그저 모른 척 하십시오. 그저 전 처럼 무덤덤하십시오.

     

    다섯.

    나는 이제, 조금씩만 사랑하고 조금씩만 그리워 하기로 했습니다.

    한꺼번에 사랑하다 그 사랑이 다 해버리기보다, 한꺼번에 그리워하다 그 그리움이 다해버리기 보다,

    조금씩만 사랑하고 조금씩만 그리워해 오래도록 그대를 내 안에 두고 싶었습니다.

    아껴가며 읽는 책, 아껴가며 듣는 음악처럼 조금씩만 그대를 끄집어내기로 했습니다.

    내 유일 한 희망이자 기쁨이던 그대.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이 없어지고 지워지지만

    그대 이름만은 내 가슴속에 오래오래 남아 있길 간절히 원하기에.

    (그림 : 박진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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