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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 - 비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다시(詩)/이정하 2013. 11. 24. 18:38
1.
기차는 오지 않았고
나는 대합실에서 서성거렸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비옷을 이은 역수만이 고단한 하루를 짊어지고
플랫폼 희미한 가로등 아래 서 있었다.
조급할 것도 없었지만 나는 어서
그가 들고 있는 깃발이 오르기를 바랐다.
산다는 것은 때로 까닭 모를 슬픔을
부여안고 떠나가는 밤열차 같은 것.
안 갈 수도, 중도에 내릴 수도,
다시는 되돌아올 수도 없는 길.
쓸쓸했다. 내가 희망하는 것은
언제나 연착했고, 하나뿐인 차표를
환불할 수도 없었으므로,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버릇처럼 뒤를 돌아다 보았지만
그와 닮은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끝내 배웅도 하지 않으려는가,
나직이 한숨을 몰아쉬며 나는
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다.2.밤열차를 타는 사람들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가슴 속 너무 깊숙이 들어 있어
꺼내지도 못할 사연이.
졸려서 충혈된 게 아니다.
지나온 생애를 더듬느라
다 젖은 눈시울이여,
차창 너머 하염없이 무엇을 보는가.
어둠의 끝, 세상의 끝이 보이는가.
밤열차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깊이 정들지 말자.
그저 조용히 있게 내버려두자.(그림 : 김지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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