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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 밤 편지시(詩)/김남조 2013. 11. 19. 18:46
편지를 쓰게 해다오.
이날의 할말을 마치고
늙도록 거르지 않는
독백의 연습도 마친 다음
날마다 한 구절씩
깊은 밤에 편지를 쓰게 해다오.
밤 기도에 이슬 내리는 적멸을
촛불빛에 풀리는
나직히 습한 악곡(樂曲)들을
겨울 침상(枕上)에 적시이게 해다오
새벽을 낳으면서 죽어가는 밤들을
가슴 저려 가슴 저려
사랑하게 해다오.
세월이 깊을수록
삶의 달갑고 절실함도 더해
젊어선 가슴으로 소리내고
이 시절 골수에서 말하게 되는 걸
고쳐 못쓸 유언처럼
기록하게 해다오
날마다 사랑함은
날마다 죽는 일임을
이 또한 적어두게 해다오.
눈 오는 날엔 눈발에 섞여
바람 부는 날엔 바람결에 실려
땅 끝까지 돌아서 오는
영혼의 밤외출도
후련히 털어놓게 해다오.
어느 날 밤은
나의 편지도 끝날이 되겠거니
가장 먼 별 하나의 빛남으로
종지부를 찍게 해다오그 사람
(그림 : 최정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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