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주영헌 - 김장

누렁이 황소 2023. 11. 30. 18:01

 

 

김장은 우리 집 제3의 명절이다.

차례나 제사는 없어도

김장은

지나온 시간과 지나갈 시간을 버무리는 시간이다.

올해 난 배추와, 파, 붉은 고추…

수년간 묶은 멸치젓갈

날것과 묵은 것

함께 잘 버무리는 시간이다.

김장은

사람을 버무리는 시간이다.

한 해 동안의 마음속에 쌓았던 슬픔과 아쉬움

툭툭 털어버리고

삶의 간 잘 맞도록

허기지지 않도록

잘 버무려 허전한 삶의 구석 채우는 시간이다.

모두 수고 많았어

수육을 돌돌 말던 김치가 말을 건넨다.

김장 김치 익어가는 내년에도

우리 가족

너무 매콤하지도 싱겁지도 않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림 : 안호범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