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정호승

정호승 - 뒷모습

누렁이 황소 2023. 7. 26. 23:25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답다고

이제는 내 뒷모습이 아름다워졌으리라

뒤돌아보았으나

내 뒷모습은 이미 벽이 되어 있었다

철조망이 쳐진 높은 시멘트 담벼락

금이 가고 구멍이 나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제주 푸른 바닷가 돌담이나

예천 금당실마을 고샅길 돌담은 되지 못하고

개나 사람이나 오줌을 누고 가는

으슥한 골목길

담쟁이조차 자라다 죽은 낙서투성이 담벼락

폭우에 와르르 무너진다

순간 누군가

담벼락에 그려놓은 작은 새 한마리

포르르 날개를 펼치고

골목 끝 푸른 하늘로 날아간다

나는 내 뒷모습에 가끔 새가 날아왔다고

맑은 새똥을 누고 갈 때가 있었다고

내 뒷모습이 아름다울 때도 있었다고

(그림 : 김구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