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성신 - 성게

누렁이 황소 2023. 7. 5. 17:53

파도가 울수록 가시를 세웠다

그렇게 살았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다

 

칼끝이 내 속을 깊숙이 찔렀을 때

나의 바다도 도려지고 있었다

몸을 움츠리고 돌아누운 밤이면

집을 잃은 소라게들이 절룩거렸고,

 

포말을 검은 가시로 채운 나는

결가부좌 한 단단한 산호처럼

인과 연을 뾰족하게 세우기 시작했다

 

물속에 가라앉던 날들을 생각한다

모래와 비바람으로 젖은 입을 틀어막고

헛된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그 무엇도 헛되지 않음을 비로소 알았을 때

가슴부터 발바닥까지 질펀한 갯내가 뿜어졌다

 

노란 알들이 오래전 당신의 얼굴 같다

그것은 비릿하고 또한 담백하다

뼈 없이 금간 여름날들이 천천히 오므라질 때

비로소, 번민임을 알겠다

 

견딜 수 있느냐, 는 선문답에

입속에 박힌 혀를 내밀며

나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면 해풍을 타고 온 붓다가

우니~ 우니~ 하고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