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상국

이상국 - 다저녁때 내리는 눈

누렁이 황소 2023. 1. 30. 06:13

 

다저녁때 눈 온다

마을의 개들이 좋아하겠다

아버지는 눈 오는 날 피나무로 두리반을 만들거나

손바닥에 침을 뱉어가며 멍석을 맸다

 

술심부름 갔다 오는 아이처럼

겅충겅충 가로등 아래 눈 온다

주전자가 좋아하겠다

아버지는 어느 해 겨울

그 멍석으로 기어코 당신의 문상객을 맞았다

 

눈은 아무것도 모르고 와

공평하게 마을의 지붕을 덮는다

불빛 화안한 창들

지저분한 나라도 좋아하겠다

 

눈은 천방지축 어둑한 골목길로 돌아다닌다

눈은 자기가 눈인 줄도 모르지만

눈에게도 고향이 있어서

거기 가서 내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림 : 장용길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