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박동덕 - 시절인연

누렁이 황소 2023. 1. 2. 06:50

 

억새꽃 일렁이는 산머리에 어느덧 황혼

생각은 깊어지고 기억은 희미해지고

내 곁을 스쳐간 이름들이 하나씩 지워지고

오래오래 내 곁에 머물기 바랐지만

결국은 스쳐 지나갈 뿐인 인연들

모두가 어제 같은데

꽃 지고 잎 떨어진 들길 같았어

 

그대와 같이 식탁에 마주앉아

하나의 꼭짓점,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았지

황혼의 행복을 꿈꾸며 서로를 다독였지

희미해져가는 실눈을 뜨고 실실 웃었지

눈물 나게 좋아 웃던 그 순간도

티격태격 어긋났던 그 순간도

서로를 위해 자기를 버렸던 순수한 그 감정도

살아내기 위한 순간이었을 뿐

 

잊혀져간 이름, 가끔 생각나는 이름

지금 내 옆에 있는 그대

결국은 홀로, 홀로 산머리 넘어 떠나야겠지

(그림 : 김태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