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기택 - 가죽 장갑

누렁이 황소 2022. 11. 1. 06:29

 

팔 없는 손이 탁자에 놓여 있다.

할 일을 다 잊은 다섯 손가락이 달려 있다.

손에서 갈라져 나온 손가락처럼

뭔가를 쥐려 하고 있다.

뭔가를 달라고 하는 것 같다.

손가락마다 구부리거나 쥐었던 마디가 있다.

습관이 만든 주름이 있다.

주름 사이에서 몰래 자라오다가

지금 막 들킨 것 같은 손금이 있다.

지워진 지문이 기억을 되찾아 재생될 것 같다.

털과 손톱도 가죽 깊이 숨어서

나올 기회를 틈틈이 엿보고 있는지 모른다.

피도 체온도 없이 손이 탁자에 놓여 있다.

빈 가죽 안으로 들어간 어둠이

다섯 손가락으로 갈라지고 또 갈라지고 있다.

(그림 : 이영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