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장문석 - 조금은 외로운 사랑

누렁이 황소 2022. 10. 24. 12:28

 

때로 사랑이 두려워지면 우리

저 남쪽 신안의 앞바다로 가자

거기서 너는 꼭 반달만 한 섬이 되고

나는 꼭 조롱박만 한 섬이 되자

너무 멀리는 말고 문 열면 지척인

그저 반 마장쯤의 거리에서

너는 반달섬이 되고 나는 박섬이 되자

조금은 우리 사랑 식혀 보자

너는 밤마다 반달로 오르고

나는 조롱박에 천년 샘물을 담아

온밤이 아닌 딱 반밤만

달 물살 반짝여 보자

나머지 반밤은 하늘에 뿌려

은하로 흐르게 하자

그래도 못내 사무치면

너와 나 사이에 길을 놓자

진종일 오가는 바윗길이 아니라

물 들면 잠기고 물 나면 드러나는

그런 노둣길을 놓자

그 노둣길 걸어 한나절이 아닌 딱 반나절만

해조음에 귀 기울이자

나머지 반나절은 물속에 두어

짭조름히, 짭조름히 절여지게 두자

한생이 쉬이 저물어서야 쓰겠는가

그래서 먼 훗날에도

달 물살 일고 노둣길 열리면

마침맞게 잘 절여진 우리 사랑을

하얀 식탁 위에 올려 보자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그것도 한 술씩은 말고 딱 반 술씩만

서로의 혀끝에 올려 보자

그렇게 조금은 외로운 사랑을 하자

(그림 : 김정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