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권순자 - 골목길 1

누렁이 황소 2022. 9. 30. 15:04

 

정릉 골목길을 걷는다

사라지기 전에 그리운 연인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마주하는 마음으로 걷는다.

 

나이 먹어 정감이 풀풀 나는 골목을

백열등 전등빛이 금빛으로 물들이는 밤

 

구수한 된장냄새

왁자지껄한 목소리마저 고요히

수채화 물감처럼 풀어진 길

 

술 몇 잔 걸친 걸걸한 목소리

곤히 잠든 밤

 

깃든 영혼을

그윽한 눈빛으로 품고 있다

 

구들을 데우느라 하얗게 타버린 연탄재가

푸른 대문 앞에서

여린 달빛에

시간을 달구는 골목길을

 

아픈 발목을 끌며 천천히

정겨운 품안을 거닌다

조각달이 뿌옇게 어깨를 토닥인다

(그림 : 이갑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