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규리

이규리 - 제라늄

누렁이 황소 2022. 7. 22. 16:33

 

안에서는 밖을 생각하고 밖에서는 먼 곳을 더듬고 있으니

나는 당신을 모르는 게 맞습니다

 

비 맞으면서 아이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어요

약속이라고,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물은 비를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나 봐요

 

그런 은유라면

나는 당신을 몰랐다는 게 맞습니다

 

모르는 쪽으로 맘껏 가던 것들

밖이라는 원망

밖이라는 새소리

밖이라는 아집

밖이라는 강물

 

조금 먼저 당신을 놓아주었다면 덜 창피했을까요

 

비참의 자리에 대신 꽃을 둡니다

 

제라늄이 창가를 만들었다는 거

창가는 이유가 놓이는 곳이라는 거

 

말 안 해도 지키는 걸 약속이라 하지요

 

늦었지만 저녁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으니

저녁에게 이르도록 하겠어요

 

여름, 비, 안개, 살 냄새

 

화분을 들이며 덧문을 닫는 시간에 잠시 당신을 생각합니다

흔들림도 이젠 꿈인데

 

닫아두어도 남는 마음이란 게 뭐라고

 

꽃은 붉고

 

비 맞는 화분에 물도 주면서 말입니다

(그림 : 이임호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