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박위훈 - 난젖

누렁이 황소 2022. 7. 1. 12:57

 

매운 기억마저 얼어붙는 삼동

빈 가지가 쥔 여남은 모과는 향기에 기대 겨울을 쇠고

이내 자욱한 산으로 올라간 주인냥반

안개 낀 샛강 줄기처럼 가뭇없다

한도 삭히면 약이 되듯

칠백 평 고추 농사에 개먹은 한숨이

성긴 주름을 풀어 부르튼 입술을 시침질했다

닳아 짓물러 희미한 당좌(撞座)의 연꽃이

자늑자늑 소리의 보폭을 넓혀가듯이

때 절은 치맛자락을 타고 오르던 여린 넌출들

살아야 했다

나무도마의 패인 자국이 골 깊은 주름으로 눕는 밤

마름의 유세 같은 공공근로의 곱은 하루에

난젖 두어 자밤 올려 허기를 비비면

청상의 날들도 봇물 넘치듯 흘러갔다는 안동할매,

정지에서 생태 다지는 소리가 조왕신을 부르는 것 같다

틀어진 돌쩌귀처럼 바람 숭숭 들던 무릎걸음 소릴 듣고

혹여 젊은 주인냥반 찾아올까

서걱대는 서숙대도 두 귀 곧추세웠고

할매 저린 손목도 가뿐했겠다

 

삼동의 주름이 무장무장 깊어간다

예닐곱 날 지난 난젖 맹키로 그리운 것들만 더디 곰삭는다며

괘안타며 담뱃진 피어난 손끝에서

한(恨) 몇 가락 자꾸 미끄러진다

난젖 :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다. 안동지방에서 삼동 무렵에 만들어 먹는 젓갈로

무, 생강을 잘게 썰어 뼈째 다진 생태를 고춧가루에 버무린 음식

(사진 : 네이버 벽옹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