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최병호 - 1인극
누렁이 황소
2022. 6. 14. 21:51
무대는 해변에도 지하철역에도 있어요
해바라기처럼 고개를 돌리는 해가 비치는
노천카페가 적당해요
철학마저 가난한 작가의 창작극을 무대에 올리면서
광대로 처음 출연했어요
아무 장면에서나 끼어들어 흐름을 바꾸어버리는 것이 나의 캐릭터예요
대본이 따로 없는 것이 나의 대본이에요
시장기가 도는 오전에는 다소 날카로워져
헐벗은 광기를 창조하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점심을 먹고 나서는 한결 느긋해져
광기를 잃어버렸어요
연출 선생님은 무대 구석에 흘린 나의 광기를 바로 주워
호주머니 가득 채워주셨죠
객석은 늘 고무줄 같아요
아주 가끔은 관객들이 가득 차기도 하지만
다 먹어가는 옥수수처럼 듬성듬성하기도 해요
그런 날이면 나는 꿈을 꿔요
햇빛처럼 환한 텅 빈 객석 하얀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혼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어요
나의 무대 정신은 더욱 단단하게 구워졌어요 그럴 때면
오세요
우리는
관객이 한 명만 들어도 막을 올리는
프로들이에요
(그림 : 심성희 작가)